하고 싶었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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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이씌 2023. 4. 27. 23:33

 이상하게도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죽고 싶었으나, 삶이 힘들어서 그런 것이 아닌, 그저 살고 싶은 이유가 없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삶이 힘들지 않다기에는 부끄럽고 굴곡진 생애이기도 했습니다. 생애라 하잘 것 없이 젊은 나이에, 그럼에도 후회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후회하되, 끝은 원망으로 가득찬 삶을 살았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따지면, 항상 어릴 적의 기억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려 합니다. 매일 같이 우울한 기분이 엄습할 때면 그 시절의 기억으로 덮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들을 손바닥 아래로 가려버립니다. 수백 번, 수천 번을 생각해도 아직 결론나지 않은 일입니다. 부모의 잘못인가, 자식의 잘못인가, 그보다 더 큰 범주에서 내려오는 관습의 피해자일 뿐인가.

 쉽사리 이야기하고 결론 지을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흔하지 않은 일도 아닙니다.

 적당히 가난한 가정과, 불화가 있는 부모 사이, 그 여파에 자존감이 목구멍을 타고 위장 속에 녹아버리는 아이들. 매일에 듣는 소리는 공부에 대한 부추김이 아닌, 부모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표출이었습니다. 아마, 부모는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성인이 된 나도 아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걸 모르는 것은 초등학생의 자식입니다.

 맞는 것은 일상이었습니다. 시대가 허용하는 매질이었습니다. 그것 또한 나는 이해하되, 나는 이해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방법 같은 건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시간 순으로 가면 고작 초등생의 아픔에서 시작합니다. 가끔 전기세를 낼 돈이 없이 불이 들어오지 않는 집안, 그럼에도 잘 구슬려진 아이들은 부모의 품에 안기며 '괜찮다'라고 입 밖에 냅니다. 그것이 옳은 일이라 알고 배웠습니다. 가난한 집안에서도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아마 그것은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순 없다'라는 서적에 나온 글귀였을 것입니다. 부모는 흔히 멋진 글귀에 쉽게 흔들리곤 했습니다.

 그래도 멋진 글귀가 썩 나쁘진 않습니다. 내가 태권도를 다니기 시작했을 떄 무렵만 해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체력이 좋아야 뭐든 할 수 있다는 말 한마디에 부모는 너그러이 태권도를 허락했습니다. 즐거운 한 때였습니다. 합기도에서도 많은 추억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시절에 했던 게임이나, 관장에게 맞은 기억이나, 아직 생생하고도 마주하면 낮부끄럽고, 행복한 기억입니다.

 시작은 한 학원에서 배출한 천재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아이는 분명 천재가 맞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사의 제목은 '범재'로 시작했습니다. 재능 없는 아이가 좋은 학원을 다니고 좋은 대학에 갔다는 이야기. 어째서 부모는 그런 기사에 덥석 물려 나를 그런 곳으로 내몬 것일까요. 가벼운 판단으로 자신의 아이가 그나마 형편이 나아진 지금의 자택 옥상에서 목숨을 끊고자 했다는 것을 그 사람이 알까요. 사실은 알지 않아주었으면 합니다.

 멍청함, 지능이나 천재, 재능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진부하고 자극적인 기사에 현혹되는 사람은 으레 멍청하기보단 기댈 곳이 필요할 뿐이었을 테니까요. 나도 그러합니다. 뻔한 글을 쓰며 기댈 곳을 찾고 있지 않습니까.

 기댈 곳. 부모는 아마 기댈 곳이 필요했나 봅니다. 가정의 불화, 적당한 가난함, 적당해보이는 아이들. 그곳에서 일말의 희망을 찾고자 했나봅니다. 아마 그것이 아이들의 성공을 위한 것이었을지, 자신의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신분 상승의 욕구였을지도 아직 고민 중인 문제입니다. 적어도 한쪽만 있었다고 이야기하기에는 힘든, 그런 집안이었습니다.

 학원에는 입단 테스트가 있었습니다. 몇 개의 문항은 아직도 기억납니다. 물이 녹으면 무엇이 되며, 그 이유가 뭐고, 주어진 문장을 창의적이게 완성하면 무엇이고. 간단한 퍼즐도 있었지요.

 부모는 입단 테스트가 있기 이전부터 '창의력 키우기'에 관한 책을 사들였습니다. 아이에게 읽혔습니다. 잠이 쏟아질 듯 머릿속에 떨어지고, 아른거리는 시야 속에서도 문제를 맞추지 않으면 혼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나도 읽기 어려워 하는 군주론, 논어 등의 고전을 읽으며 또다시 혼났습니다. 야단과 잔소리에 대한 푸념은 아닙니다. 가혹함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입단 테스트는 아마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입단 테스트가 있다는 말을 흘려놓기만 해도 부모들이 알아서 기준을 맞춰왔기 때문이었겠죠. 그러고 나선 선생은 말합니다. 아이에게 빛나는 한 줌 재능이 보이노라고.

 나는 좋았었습니다. 잘 몰랐었습니다.

 나는 그런 생각에. 아니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학원에 들어갔습니다. 지금까지 친구들과 다니던 태권도 도장을 끊고 말입니다. 가끔은 집의 부유함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태권도와 학원을 같이 다녔으면 조금이나마 어린 나의 일상이 편하지 않았을까 하고 말입니다. 너무 이야기의 비약이 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지울 수는 없는 생각입니다.

 몰랐다는 말로 무마하기에는 너무 생각없는 행동이었다 매일 밤 후회를 합니다. 인생의 분기점이었습니다. 인생의 가장 큰 분기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매일 울적한 마음을 가지고 후회를 합니다.

 학원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조금만 더 생각을 해서 태권도를 계속다녔다면? 나는 그런 생각으로 매일밤을 채웁니다

 그 생각은 절정으로 갈수록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서서히 변화하곤 합니다. 어지러운 생각이 듭니다. 흉악한 생각도 합니다. 분노에 차 씩씩거리다가 잠이 나를 데리러오면 해결되지 않는 분노를 마음에 품고 다음날에 살아갑니다.

 학원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나는 이 학원을 '원'이라고 말하려 합니다. 표면상으로는 영재를 기르는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배움은 없었고, 영재를 기르려는 사람들도 없었습니다. 그 우악스러웠던 운영 방식과 끔찍하기 그지없었던 체벌행위에 경멸과 멸시를 담아 '원'이라 부르기로 하겠습니다.

 수용소의 이야기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일체의 사실입니다. 원에서 있었던 모든 행위는 실존했고, 끔찍한 것들이었습니다.

 나의 나이가 9살이었음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원의 이야기 속에 나는 나의 나이를 계속 상기시켜 드릴 것입니다.

 그것은 원망이며, 설득입니다. 아마 구원을 바라는 마음이 조금은 담겨있습니다. 부모와 나의 잘못을 저울질 하는 그 무게추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성속하지 못했고, 육체적으로도 그 체벌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그 아이는 9살이었습니다. 부디 그 아이에게 동정심을 가지고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원은 지옥이었습니다.